기호의 해체 : 포스트모던 광고에 관한 연구
김 덕 자 (대유공업전문대학 교수)
I. 문제 제기
파편화된 이미지, 불연속적인 의미들의 중첩, 해체된 기호들이 광고 속에서 난무하고 있다. 기존의 광고 속에서 보여지던 도식적이고 의도적인 기호 설정이나 체계와는 거리가 먼, 해독 불가능한 광고 이미지들은 보는 이에게 새로움의 충격과 함께 기호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들어 베네통과 같은 외국 브랜드들의 수입 개방과 다국적 기업들의 대거 국내 진출로 말미암아 광고 상황도 급격하고 신속 하게 국제적인 감각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또한 각 분야에 확산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현상은 광고에 발 빠르게 도입되어 컴퓨터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등과 함께 TV CF표현 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의문 부호와 숫자들‥‥그리고 X세대를 상징하는 소품과 모델들을 스피디하게 전개해 나가는 엑스존 패션 내의 광고, 백남준의 작품을 광고에 응용한 칠성사이다. 광고들은 모두 포스트모던 시대에나 가능한 광고로 보여진다.
그러면, 이러한 광고들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되고, 의미 작용을 일으켜 광고가 이루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점에 근거하여 필자는 '반복 없이는 기호도 없다'는 롤랑 바르뜨(R.Barthes)의 명제를 토대로, 파편화된 기표, 해체된 기호들이 TV 광고의 특성인 시각적 반복을 통하여 새롭게 재구성되고 조합된다는데 주목하여 본고를 끌어 나가고자 한다.
"해체(la deconstruction)"란 용어는 자크 데리다(J.Derrida)가 구조주의를 해체시키면서 언어학자 소쉬르와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을 주로 겨냥한 데 착안하여 사용하는 것임을 밝혀 둔다.
또한 해체주의의 대표 주자로 뽑히는 데리다가 철학적 논리에 근접해 있는데 반하여,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미디어나 디자인, 사회학에 더 관심을 쏟고, 특히 광고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포스트모던 사회 이론을 전개한 점을 감안하여, 본 고에서는 주로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데리다의 해체 이론이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하이퍼 리얼리티 이론의 지평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TV광고가 그 시대의 거울이며, 삶의 기호라 할 때, 최근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광고들의 새로운 시도는 결코 단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도 그만큼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한 예로 위에 언급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여러 이미지들을 골라 주한 칠성사이다. 광고를 소비자들이 새로운 시각의 참신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만 보아도 숨가쁘게 변화해 가는 소비자들의 정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보드리야르 이론을 토대로 최근 국내에서 전개되고 있는TV CF의 분석을 통해 해체된 기호들이 새롭게 재맥락화 되고, 파편화된 기표들이 새로운 기호로 재구성되는 것을 살펴보고, 그 이론적 배경과 앞으로의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II. 쟝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던 기호 이론
1. 보드리야르와 TV 광고
미디어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사유는 네오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탈 구조주의로 나가는 궤적을 따르는데, 1968년에서 1973년에 걸치는 초기 저작은 소비 대상물의 이론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보충하려는 시도들이었다.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더했고, 생산 양식에 의미 작용의 양식을 더했다.1)
오늘날 경제적 문제는 자동차를 어떻게 생산하느냐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있다. 소비의 분석은 가치와 효용성이란 경제적 범주로부터 기호와 기표라는 언어적 범주로의 탈바꿈을 필요로 한다.
보드리야르는 <신화론>의 바르트와 라캉적인 프로이트를 종합해서, 상품은 백일몽 같은 환상을 진부한 물건에 결합시키고 에로티시즘을 경제와 결합시킴으로써 욕망을 산출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결합자는 언어의 구조를 변형시킴으로써 기호학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한다. 2)
보통 기호는 물리적 형태인 단어와 정신적 개념으로 구성되며 지시 대상, 즉 실제 세계의 사물과 연계된다. 기호가 사람들 사이에 교환될 때 상징적으로 된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서로 간의 관계를 맺는 개인들 사이에서 모호하게 부유한다. 단어는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화자 사이에 공유되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거나 위축시키는 일종의 선물처럼 교환된다. 이런 것이 보드리야르의 언어적 유토피아, 이상적 대화 상황이다.
그런데 소비 대상물의 광고는 이 모든 것을 바꾼다. 광고는 하나의 기표, 즉 구입하도록 촉진되는 대상물과 어떤 관습적인 관계도 갖지 않는 단어를 취하며, 그 대상물과 연결되는 단어로 기표된다. 광고는 하나의 새로운 언어학적, 커뮤니케이션적 실체를 구성하며, 이들 부유하는 기표들은 광고를 통해 재맥락화 됨으로써 그 효과를 산출한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추출해 낸 로맨스와 섹시함은 언어력을 증대시킨다. 광고에서 마루 바닥을 섹시하게 윤내는 약은 실제 관계 속의 남녀보다 더 로맨틱하다. 이러한 잉여 의미는 광고 특유의 언어적 구조로부터 나온다. 윤내는 약 광고 속의 로맨스는 일상생활에서는 찾지 못하는 그런 단어와 의미로 구성된다.
어떤 평범한 여자가 시원찮은 왁스로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이때 섹시한 남자가 불현듯 나타나 부엌으로 들어온다. 부엌에 그 모습을 드러낸 섹시한 남자의 바로 그 불가능성(비디오 테이프의 정교한 접합에 의해 화면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그 광고를 재현적, 과학적 논리로부터 떼어놓는다. 그 남자의 만화 같은 출현은(신데렐라와 결혼하는, 모든 여성이 이상적인 신랑감으로 마음 속에 그리는) 왕자의 환영, 그러나 소설책이나 옛날 동화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집 부엌에 있는 듯한 왕자의 모습을 표현한다.
<죤슨>이라는 윤내는 약은 낭만적인 구원에 필적한다. 그 상품에는 그것의 사용가치 및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실로 그러한 가치와는 다른 위상을 갖는 기호가치가 부여된다. '로맨스 = 바닥 왁스' 라는 등식이 갖는 <무의미함> 그 자체가 그 상품의 의미를 소통하게 하는 조건이다. 3)
새로운 의미작용 양식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TV광고에서는 부유하는 기표들이 광고라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상품에 부가된다.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 능력은 그것의 관습적인 성격 때문에 인정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능력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이자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에 힘입어 각 TV광고는 언어의 본원적인 능력을 묘사한다. 즉 언어는 재창조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키는 TV 광고를 통하여 새로운 관계들이 확립되는 것이다. 4)
2. 실재의 모사, 부재의 극실재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에서 보드리야르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사회, 즉 포스트모던 사회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 사회는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 즉 시뮬라르크들이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사회다. 그리하여 이제 재현과 실재의 관계는 역전되며 더 이상 흉내낼 대상, 즉 원본이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극실재(hyper reality)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TV광고에서는 일상생활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비실재가 실재로 되며, 어떤 의미도 없는 일련의 의미가 소통 된다. 보드리야르의 용어로 커뮤니케이션의 시뮬레이션이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소통된다. TV광고에서의 상품은 점포에서 가져와서 소비 되는 상품과 같은 것은 아니다. 후자는 유용하지만 무미건조하며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나 망각하기 쉬우며 효력을 발휘하나 일상적이다.
이에 비해 광고와 점포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상품은 환상적이고, 포만감 있고, 갖고 싶은 자극적인 것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코드(code) 속에 주체를 구성하는 광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에 빚어진다. 극실재(하이퍼 리얼리티)는 언어적으로 TV 광고에서 창조되며, 소비자가 사용자의 위치에 놓이게 될 때, 광고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구성된 주체가 상품-대상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주체로 바뀔 때 사라진다. 5)
소비자는 특정한 상품의 사용 가치보다는 TV에서 광고하는 상품의 교환 가치 때문에 구매에 대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광고에 의해 조작당하면서 은밀히 그런 환각을 갖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무의식에 그 모든 것이 연결된다. (물론 이 무의식이 미리 소비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프로이트가 말한 바와 같이 무의식 이 라고 하는 것은 상징과 환각을 먹고 사는 인간의 은폐된 본질이다.) 여기에서는 예전에 의식의 수준에서 주체와 객체 사이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악순환이 무의식과 환각 사이에 있다. 그들은 무의식과 환각을 중첩시켜서 개별적 기능으로 스테레오 타입화 된 무의식과 광고 대행사에 의해 완성품의 형태로 전달된 환각을 결합한다. 6)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실재를 모사하고, 없는 것을 극실재로 묘사하는, 즉 유행 속에서의 미보다 더 아름다운 미, TV에서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현실들로 인해 실제 내용들은 말소되고 거기에는 명명백백한 이미지들만이 대체되는 것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 시뮬레이션의 질서를 추동하는 것은 정보와 미디어의 증식 인데,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공식에서 출발하면서, 이제 미디어 자체가 증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맥루한을 넘어서 나아가고 있다.
3. 반복을 통한 기호의 재구성
기호학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19세기 말과 20세기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였다. 미국에서는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Fierce, 1893∼1914)가 기호론(semiotic)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학문을 세웠다. 한편 유럽에서는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 가 작고한 뒤, 그의 제자와 가까운 동료들에 의하여 1916년에 출간된「언어학 개론」(Course in General Linguistics)에서 기호학(semiology)라는 새로운 과학을 주장했다. 7)
소쉬르는 오늘날 기호학자들이 쓰고 있는 용어와 개념을 많이 고안해 냈는데, 기호(sign)를 기표 (기호표현:signifier)와 기의 (기호내용:signified)로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기호는 물리적 실체와 그와 관련된 '정신적인 요소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물리적 실체는 기표(signifier)이며 물리적'실체'에 대한 정신적 개념이 기의(signified)가 된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가 합해져 의미를 갖게 되며, 이 때 기표가 일반화된 의미로 해석되는 과정을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 한다. 8)
이를 간략하게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소쉬르의 기호에 대한 개념을 확대하여 바르트(R. Barthes)는 기호들이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에 이를 적용하였다. 바르트가 제시한 의미작용의 2단계는 소쉬르가 제시한 기호표현 + 기호내용 = 기호의 의미 작용을 1단계로 보고 이를 외연(denotation)이라 정의했다. 이 단계는 의미작용의 객관적이고 가치 자유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로는 내포(內包, connotation)의 의미를 창출하는 단계로 바르트는 이를 신화적 차원으로 정의했다. 바르트가 제시한 의미 작용의 2단계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바르트는 이 내포적 의미의 기호표현, 즉 신화 차원의 기표(도표의 1)를 형식 (form), 기의(도표의 2)를 개념(concept), 기호(도표의 3)를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 부르고 있다. 즉, 소쉬르의 의미작용 개념을 신화차원으로 확대하여 그 기호가 작용하는 문화적 가치를 추가한 것이다. 9)
이러한 의미작용 단계를 광고 텍스트에 적용시켜 보면, 광고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호들의 의미작용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며, 신화의 단계는 이러한 기호의 의미가 상품으로 이전되어 상품이 기표로서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게 된다.
보드리야르의 소비 사회에 대한 이론은 마르크스 이론을 수정하는 작업에서 시작하여 이를 비판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그는 소비 사회를 설명함에 있어 소쉬르의 기호 이론을 원용한 사회이론을 제시하는데, 마르크스주의나 자본주의는 모두 생산양식에 근거한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서는 생산은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경우 기표는 기의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기호/의미화 작용에서 큰 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소비 사회에서는 기표가 기의와 유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표는 기의를 지시할 수 없다. 따라서 기표 는 "떠다니는 기표"(floating signifiers)일 뿐이며, 기표가 궁극적 대상을 지시한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기표가 기의를 지시하지 않고 기의와 유리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의 보다 우위에 서는 기표가 기호로서 그리고 코드로서 소비자의 욕망을 선정적으로 부추기는 시대가 곧 보드리야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사회의 이미지이다. 10)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각 기호들이 문장을 만들기 위하여 상호간에 분절(articulation) 있어야 한다. 즉, 각 기호들이 어떤 논리적 관계에 따라 잘리고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광고에서는 이와 달리 기호들이 순간적으로 일상적으로 허용된 논리를 넘어서서 결합하고 배치된다. 즉, 기호 들은 논리와 의미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규칙을 따르게 된다. 단순화된 여러 이미지들의 혼잡한 나열은 꿈의 이미지들이 일상적 논리와는 다르게 배치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 이미지들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의미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11)
즉, 전혀 의미가능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서로 등가로 놓이기도 하며, 각기 독립된 이미지들이 조립되고 중첩되면서 새로운 장면을 창조해내는 몽타주 기법이 광고에 등장하게 된다. 기호, 그것은 반복하는 것이며, 반복 없이는 기호도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기호를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호를 인식하는 것은 기호를 확립하는 것이다. 12)
따라서, 아무리 메시지가 부재하고 불연속적인 이미지들의 나열일지라도 반복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것은 또 나름대로의 하나의 기호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III. 기호의 해체 : 포스트모던 광고
1. 해체된 기호들의 몽타주 : 엑스존 광고
엑스존 광고 속에는 기존 광고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들은 부재하고, 기호로서의 해독도 불가능하게 하는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림3)을 보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의문부호와 숫자들‥‥ 그리고 X세대를 상징하는 방독면, 안경, 코카콜라 캔과 같은 소품들이 이어진다. 잇달아 새장 속에 갇힌 여자, 검은 안경을 쓴 남녀 모델들이 흑백 처리된 정 사진으로 스피디하게 전개되면서 "나,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마디로 X세대의 정서를 빠른 템포와 강렬한 비주얼 이미지로 표현해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설명적이고 진부한 해석이나 언어 메시지를 거부하는 X세대의 정서를 기호적이고 상징적인 비주얼 언어로 구성하고, 그 들의 호흡을 대변이라도 하듯 초스피드로 전개되는 화면을 통해 상품화 되고 충동화 된 요즘 신세대들의 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광고는 한결같이 자사 상품의 특성이나 장점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게 마련인데, 이 때 소비자들은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는 의도성에 식상하고 거부감마저 갖게 된다. 반면에 전혀 상품과는 무관한 듯 보이는 이미지들의 몽타주는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연결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 속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의미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즉, 계속되는 광고 노출을 통하여, 시각적인 반복에 의한 새로운 기호 체계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담한 전략적 광고는 기존의 광고가 취해야 할 목적과 기능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시킴으로써 가능하며, 기호의 재구성을 향한 소비자 개개인과의 사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2. 파편화된 기표들의 꼴라주 : 칠성사이다 광고
미술 이론가나 평론가, 또는 미술 경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를 제외한 일반 대중들은 1984년 1월 2일 새벽 2시,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진행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하여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접하게 된다. TV를 통해 위성 중계된 이 작품은 한편으로 보면 낯설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했으나, TV브라운관 안에서 어우러지는 사람의 몸짓과 음악과 미술의 인상적인 화음은 시간이 갈수록 아주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전세계에 위성 중계되었고, 기술 문명과 인간 행복의 조화의 메시지였다. 13)
그의 작품은 그 이후 종종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1992년 7월 30 일부터 9월 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비디오 땅. 비디오 때"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통하여 더욱 대중과 가까워졌다. 보드리야드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진행된 사회적 상황, 즉 모더니티의 세계가 물건 또는 상품을 생산하던 시대이며 시장관계가 지배했던 시대였음에 반해 포스트 모더니티의 세계는 기호를 가지고 기호를 생산하는 기호 모형 생산 또는 비실물 생산, 즉 '시물레이션'의 시대이며 이것은 TV영상 매체와 컴퓨터에 의한 생산양식이라고 규정한 바 있듯이 14)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사가들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위대하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비디오 아트가 20세기 후반에 미세하게 세포분열을 시작한 각 분야 예술들의 종합하려는 움직임을 처음으로 가장 분명하게 복합 예술의 길로 제시했다는 사실에 있다.
백남준은 그의 작품을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하나의 커다란 꼴라주 형태로 하여 이미지의 시청각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그의 말대로 그의 꼴라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정확하고, 피카소같이 자유롭고, 르느와르처럼 색채가 풍부하고,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고, 폴록같이 강렬하며, 제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인 TV스크린 캔버스"다. 15)
백남준은 합성기를 붓과 그림의 관계처럼, 그리고 색채, 공간, 시간을 조절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으며, 그의 꼴라주 작품의 편집방식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논리적 연결을 거부하고 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한 단절과 고립 그리고 불연속으로 연속적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칠성사이다 광고의 경우, '오늘의 초상'편 20초 짜리와 연작인 '기억하는 과거'편 20초 짜리는 칠성사이다가 광복 5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제작 한 커머셜 필름이다. 풍금을 반주하시던 어릴 적 선생님, 입학하는 국민학생, 전차와 증기기관차, 새끼줄로 기차놀이 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담긴 과거 모습과 서울 올림픽과 신세대, 남산 외인 아파트 폭파 장면 등이 담긴 현재 한국의 모습,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칠성사이다 의 모습을 꼴라주 방식으로 현란한 색채와 빠른 회전으로 파편화된 기표들을 방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우리의 현재성이 내포하는 그 소중한 의미를 환기하며, 시간과 공간과 세대의 벽이 부드럽게 허물어지고 융화하는 것을 목격한다. 즉,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우리가 한국인으로 살아온 발자취와 한국인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를 향한 의지의 응집을 느끼게 된다. 16)
광고의 기본적인 컨셉이나 우리 민족과 반세기 가깝게 해온 우리의 음료 칠성사이다라는 주제를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세계와 접목시킨 <그림-4>와 <그림-5>의 광고 시리즈는 보는 이로 하여금 논리적 요소가 철저히 무시된 그러면서도 새로운 불연속의 경험을 갖게 해준다.
소비자들은 파편화된 기표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상상적 표상(imaginary representation)을 통하여 개개인의 욕구나 사용 가치를 충족시킨다. 마치 오늘날을 보드리야르가 말하듯이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가 아니라 표류하는 기표들을 숭배하는 기호의 물신 숭배가 풍미하는 시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IV.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새로운 모색 : 포스트모던 광고
어느 광고 제작자는 1995년 이후의 광고를 전망하면서, 글로벌 X세대의 출현과 그에 따른 크리에이티브 전략으로 포스트모던 광고를 꼽고 있다.
X세대라는 용어는 미국의 더글라스 쿠플런드(Douglas Coupland)가 1991년에 출간한 팝아트 스타일의 소설인 "X세대"(Generation X)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X란 수학에서 해를 모르는 대상을 X라고 하듯이 도대체 정의하기 어렵고 정체를 모른다는 뜻의 X이다. 그러므로 X세대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보수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신세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전자매체의 세대이고 영상매체의 세대이다. 이 두 가지는 지금까지의 어느 세대와는 다른 X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차별성이다. 또한 이들은 유행추구 성향이 강하면서도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며 이들의 구매력은 대단하다.
우리나라 경우도 신세대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 한다는 사실을 감안 한다면, 2000년까지는 이들의 구매력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들을 겨냥하여 이들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 내고, 광고회사들은 이렇게 생산된 상품을 광고 하는 한편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고 있다. 글로벌 X세대는 제계적으로 확산된 자본주의가 제조해낸 범세계적 판매전략의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17)
이와 같은 시장 환경을 배경으로 광고에서도 새로운 유행처럼 포스트 모더니즘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보드리야르의 말과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광고 양식 속으로 잠재적인 모든 표현 양식들이 흡수되는 시대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므로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략에 있어서 새로운 모색의 일환으로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연구되어져야 할 과제인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특히 신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상품의 경우, 그 중에서도 패션, 화장품, 신발, 음료 등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던한 감성 표현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은 우리나라 광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광고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맥콜> 광고에서 보여지는 조용필과 소녀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전환, 즉 현실과 허구의 뒤섞임이라든가, <트라이>광고의 경우는 소비자에게 광고내용의 해석 공간을 열어주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이끈다. 전통적인 서술구조가 <상품은 이것이고 이 광고의 내용은 이것이다>라고 소비 자에게 전달해 주었던 데 반해 <트라이>광고는 텍스트가 소비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게 함으로서 텍스트로의 개입을 유도하고 있다. 18)
그 외에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재맥락화라든가, 혼성모방(pastiche), 패러디(parody), 환영의 이미지 등 여러 기법들이 활용되어지고 있다. 보드 리야르가 TV를 포스트모더니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로 간주했던 것도 TV가 사회적 일상적 삶의 영역 속에서 기호와 이미지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TV가 영상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매체라는 점과 광고가 소비를 창출해내기 위해서 미학적 대중주의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광고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고 있으며, 더 나아가 광고의 표현이 새로운 포스트모던한 감성으로 구성되어져야 할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광고들이 과연 소비자를 설득하여 판매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든지, 포스트모더니즘에 가해지는 찬반 양론의 비평 등 과 함께 제기될 수 있는 포스트 모던 광고의 문제점 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며, 앞으로 계속 연구되어져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