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론 및 시사점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라 바로 문화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문화 정체성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시각적인 상징물이나 광고를 통하여 형성된 상징성이 자아 정체성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광고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 산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자아 정체성과 인간 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은 광고 표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드러진 현상으로 과거 상품 위주의 광고가 쇠퇴하고 수용자에게 초점을 맞춘 광고가 나날이 증가하며 부각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는 점점 더 분절화되고 개체화된 현대인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새롭게 변화된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이 나타날 것이고, 광고는 더욱 더 개체 중심의 내용과 표현으로 나아갈 것임을 전망하게 한다.
89년부터 97년까지 1, 472개의 텔레비전광고들을 표집·분류하여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1) 자아 정체성 광고의 경우 광고 산업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93년도부터 95년도 중반까지)에 가장 빈도수가 높았다. 이는 경제 또한 호조를 이루는 시기와 거의 유사하므로 경제적 호경기에는 개인의 감정이나 개성이 강조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욕구나 성찰이 급증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2) 자아 정체성 광고들은 대부분 자신의 개성이나 외모, 건강, 신체를 위한 제품, 즉 자기 자신과 관련된 품목(의류나 제화·화장품·세제류·식품·제약)에서 압도적인 수치를 나타냈다.
(3) 광고 크리에이티브 표현에서는 영상 이미지형이 최다 빈도를 나타내며, 드라마형이나 증언형도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신체를 통한 자아실현」의 경우 증언형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4) 소구 대상은 주로 20-30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자아도취」와 「억압된 것으로부터의 복귀 」와 같은 내용에서는 남성이 우위를 점하는 반면, 「변증법적 동일시」나 「신체를 통한 자아실현」에서는 여성이 거의 두배에 가까운 빈도를 나타냈다. 특히 「섹슈얼리티의 재구성」과 같이 성 정체성의 새로운 확립이나 성 역할의 변화 등 기존 가치관의 변화와 같은 내용에서는 여성이 두드러지게 높은 빈도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현대인의 자아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해주는 것으로 간주되는 직업과 모델의 감정 표현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났다. 즉 직업의 경우, ①불분명 ②전문직 ③화이트 칼라 순으로 나타났으며, 감정 표현은 대부분이 만족·도취·자부심·기쁨·즐거움·열망·소망·도전 등과 같이 밝고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결과는 개인으로서 인간이 바라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이처럼 만족스럽고 행복한 그리고 희망이 있는 자아이기를 원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직업의 경우 대조적인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하나는 도시인의 익명성과 현대인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 또는 프리랜서나 자유직종과 같은 불분명한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나 성공한 자아의 확인, 주위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6) 화면 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수평 안정적인 구도나 수직 역동적 구도와 함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강조한다든가 해체·탈중심적 구도·도치·전복·대칭·반사·왜곡·탈주제 등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 내면의 정서를 표현해내고 있다. 칼라 기법 또한 모노톤의 사용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자아 정체성의 내용을 다루면서 피할 수 없는 개개인의 기억이나 고독·불안· 우울·빛바랜 향수 등 원초적이며 순수한 감정 표현을 칼라 고유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화면의 배경은 자연이나 실내가 주로 나타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배경의 성격을 알 수 없는 추상적 공간 또는 불분명한 공간의 표현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인물 내면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서, 시각적으로 분산될 수 있는 배경이나 그 외의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 미묘한 심리 묘사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7) 언어적 표현에서는 자기 자신의 감정 상태, 열망이나 바램, 또는 순수한 고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자아 정체성 이미지 광고의 경우 대부분 독백형으로 나타났다. 반면, 증언형이나 서술형도 타인에 의한 자기 자신의 평가, 또는 흠없이 완벽한 이미지의 이상형, 전문지식의 소개나 전문인에 대한 흠모와 같은 광고 내용일 때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으로, 광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용하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부각되면서 대중 문화의 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IMF 위기와 함께 간접적 원인으로 제기된 우리 문화정책의 빈곤 및 사고 방식, 의식의 문제 등도 넓게는 광고에 의해 급조된 시각 문화와도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내용은 광고를 보는 이들에게 최근 유행처럼 번지던 정체 불명의 이미지 광고들과 아무런 비판이나 여과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으로 치부되어 오던 X세대 대상의 광고들을 자아 정체성 측면에서 재해석하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 여겨진다. 더 나아가 광고 표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시각적 표현에서의 크리에이티브 기법이나 문제점들을 짚고 넘어가는 기회 또한 되리라 전망해 본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를 통하여 분석된 자료와 내용은 앞으로의 광고 기획이나 아이디어 발상 등에 응용되어 폭넓은 영역 확대와 실질적 자료의 활용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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