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 광고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글 : 임은모/광고평론가

“한국의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하던 울산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제조단지로 성장했다. 현대에서 제작하여 현대의 보험에 가입한 거대한 자동차 운송선이 부둣가에 정박한 채 우뚝 솟아 있다, 부두에는 미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몽고, 에콰도르로 수출하는 차들이 서 있다. 이 차들은 현대가 세운 공장에서…”

자동차산업 관련업체들은 물론이고 자동차 마케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주목받고 있는 조나단 맨틀(Jonathan Mantle)의 <자동차 전쟁(Car Wars)>의 ‘시장의 도래’편에 나온 내용의 일부이다. 이 책의 백미는 자동차 기술을 위시해 자동차 마케팅, 업무제휴의 사례, 기업 합병인수(M&A) 등 세계 자동차산업의 현주소를 통해 21세기 디지털 경제에 대응하는 방안과 경영이 제시되어 있다. 실제로 자동차 마케팅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유추를 가능케 하면서 소비자 트렌드와 자동차산업 비전까지 전기작가 출신답게 꼼꼼하게 기술해 놓고 있다. 특히 넓은 의미의 마케팅에서의 광고에 대한 견해까지 밝히는 노력은 이 책의 압권이다. 조나단 맨틀이 제시한 이론적 접근과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잣대로 삼아 이제 눈을 국내로 돌려 한국 자동차 광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를 살펴보자.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운 금자탑

1999년 5월 30일. 그리 길지 않는 한국 자동차산업에서 오랫동안 기억해도 좋을 날이다. 자동차 해외수출에서 1,000만 대를 기록한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76년 7월 현대자동차가 포니 택시 5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하면서 시작된 한국차 수출 누계가 23년만에 1,000만 대를 넘어 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자동차 수출 1,000만 대 시대, 자동차 생산 5위 나라에 링크될 수 있었다. 이제 자동차는 우리 소비자의 실생활에 떼어놓을 수 없는 대상이 되었고, 동시에 반도체와 함께 수출입국 한국의 간판업종이 되었다. 분명 이러한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관련 업계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일 것이고, 더 크게는 과학화된 마케팅과의 접목이 주효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자동차 광고의 현주소 탐방은 시작된다.

초창기

자동차 광고는 1885년 11월 미국 <호스리스 에이지>誌의 창간호에 처음 등장하였다. 한국에서는 그로부터 60년 늦은 1954년 7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월리스 자동차 수리 안내 광고가 게재되어 자동차 광고가 첫선을 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1955년 5월 같은 매체에는 영국 오스틴 자동차가 자동차 취급과 판매를 알리는 내용의 한국자동차배급주식회사 광고가 뒤를 잇는다. <광고 1, 2 참조>

<광고1,2>

이러한 초창기 광고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배경과 더불어 자동차 발달사와 행보를 같이 함을 읽게 한다. 따라서 한국 자동차 광고의 변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과 제품의 발전 구분에 근거를 두고 다음 여섯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초창기 - 고종 황제 어차(御車) 등장부터 시발 자동차 출시 이전 (1909 - 1961년)

·생성기 - 시발 자동차 출시 이후부터 포니 등장 전까지(1962 - 1975년)

·개발기 - 포니 등장부터 스텔라 등장 전까지 (1976 - 1985년)

·성장기 - 스텔라 등장에서 1994년 말까지(1986 - 1994년)

·도약기 - 서울 모터쇼 개최와 삼성 자동차 신규 참여(1995 - 1999년)

·성숙기 - 자동차 수출 1,000만 대 달성(2000 - 현재)

혹자는 한국 자동차 발달사를 생성기(1857 - 1961년), 초기 조립단계 (1962 - 1966년), 국산화 초기 단계(1967 - 1971년), 국산화 조립능력 확립 단계(1972 - 1976년), 양상 체제 및 구조조정 단계(1977 - 1981년), 수출기반 확립단계(1982 - 1988년), 도약기(1989 - 1994년), 제2의 도약기(1995 - 현재) 등 모두 여덟 단계로 세분하기도 한다.

또 자동차 판매 일선에서는 포니시대, 엑셀시대, 쏘나타I시대, 엘란트라시대, 소나타II시대, 그랜저XG시대 등 여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한국 자동차시장에서의 현대자동차의 위상을 엿보게 한다.

생성기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추진 일환으로 정부는 자동차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간 부품분해(Semi Knock Down) 과정을 도입하여 조립생산부터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적 배경 의지에 따라 새나라 자동차가 닛산의 블루버드를 조립하여 판매에 나섰고 1963년 11월에는 신진자동차공업(주)이 국내 최초로 승용차 신성호를 제작하였다.

그 후 1965년 11월 신진은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여 도요타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부품을 도입하는 한편, 국산 부품 사용으로 승용차와 버스 등 상용차를 생산함으로써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광고 3>에서 보듯이 새나라 자동차는 1962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에 ‘자동차의 국산화 시대가 왔다!’라는 헤드라인 밑에 ‘앞으로 완전 국산화될 자동차의 실물은 이렇다!’라는 바디 카피를 달고 있다. 한국 자동차 광고 역사에서 최초로 기록되었던 이 광고는 당시 한국 자동차공업이 생성기로 접어들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광고야말로 그 시대적 상황 파악의 단초라는 말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광고3>

부산소재 신진공업사도 1,500cc급 신성호(神聖號)를 출시하면서 신문매체(동아일보 1964. 4. 21자)에 본격적인 자동차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하였다. 헤드라인은 거창 하게도 ‘國産乘用車展示案內’였다.<광고 4 참조>

<광고4>

개발기

1972년 세계 1,2차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세계 자동차 수요 패턴이 소형차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정부는 ‘중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국산화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아시아공업은 기아산업에 합병된 반면, 1967년 창업한 현대자동차는 1974년 기업공개에 맞추어 제55회 토리노모터쇼에 한국고유 모델 포니를 출시해 1976년부터 첫 수출 길에 들어선다. <광고 5 참조>

<광고5>

GM과 불합리한 합작계약으로 신진공업사는 붕괴되고 1975년 대우가 국내 자동차산업에 참여하게 된다. 1976년부터 1985년까지 개발기는 과도기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광고의 포멧인 표현과 소구 목적에서 통일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광고 6>에서 보듯이 대우는 제미니를 광고하면서 ‘품질혁신’의 제안에다 부품 설명을 곁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아의 브리사 광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헤드라인인 ‘信用’ ‘勞力’ ‘꿈의 年輪 30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접하게 한다. <광고 7 참조> 그러나 한국 자동차 광고의 개발기답게 자동차 3사는 포니, 제미니, 그리고 브리사를 메인 브랜드로 삼아 광고전쟁에 불을 지피려는 몸짓을 읽게 했다.

<광고6>

<광고7>

성장기

한국 자동차 광고의 네 번째 단계인 성장기는 흥미있게도 1984년 현대의 스텔라 등장과 1986년의 대우의 르망 출시, 1987년 기아의 프라이드 탄생 등 ‘장수 브랜드 시대의 개막’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구(舊)모델이 명(名)모델’이라는 소비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스텔라와 르망, 그리고 프라이드는 롱셀러카로 대접을 받으면서 경향을 가리지 않고 전국토의 동서남북을 종횡으로 누볐다.

성장기를 더 풍성하게 기술하자면 1988년 쏘나타 출시라든가, 1991년 현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파엔진 개발하고 1993년 엑셀 태국 현지 생산개시 하는 등 기념비적 발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수준의 자동차 광고다운 광고가 전방위로 4대 매체에 등장하여 모처럼 자동차 광고의 홍수 속에 파묻혔던 시대를 이루었다.

도약기

그 동안 3强2弱 구도 속에서 도약기(1995-1999년)를 열고 있었던 한국 자동차업계는 6.25이후 최대의 국난으로 기록되는 IMF시대를 겪으면서 세 지붕 네 가족(혹은 두 지붕 네 가족)으로 재편된다. 이런 재편의 과정이야말로 도약기를 맞고 있는 당시의 한국 자동차업계의 광고 역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현장이었던 만큼 함축된 표현을 달리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 현장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1997년 서울모터쇼의 주제 ‘꿈을 현실로, 미래를 오늘로’부터 1999년 주제 ‘차와 인간, 그 영원한 우정’까지 제안함과 동시에 한국 자동차업계의 빅딜이 시작되는 그런 자리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둘째, 도약기 동안 현대와 대우가 벌인 ‘아반테와 누비라의 광고전쟁’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자동차 광고의 압권에 속한다. 다 알고 있듯이 기아가 부도로 3强 구도 속에서 도중하차하자 현대와 대우 양사가 두 제품을 놓고 벌인 광고비 투자(광고비는 지출이 아닌 투자개념이다)는 물경 100억 원에 달했다는 조사보고서가 빈말이 아닐 만큼 물량 홍수에다 크리에이티브 전술 구사로 도약기다운 광고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자동차 광고의 프로듀싱마저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역력했다.

셋째, 1998년 2월 17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지금의 르노삼성)자동차의 신차 발표회의 초대이다. 잇단 특혜 의혹 속에 어렵게 시동을 걸었던 삼성자동차가 3년간의 준비 끝에 첫 작품인 2,000cc급 SM5시리즈 발표에 즈음하여 천문학적인 광고비 투자가 시작되면서 한국 광고계의 뜨거운 감자로 해석하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시장 분위기는 새로운 경쟁체제로의 초대이기 때문에 많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는 단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넷째, 현대는 똑같은 해인 10월 1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그랜저XG’의 공식 데뷔 행사를 열었다. 대형차의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고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과 품격 높은 하드람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그랜저XG(Extra Glory)’는 그렇게 선보였다. 현대는 그랜저XG 출시로 최강의 동력 성능과 각종 편의 사항을 정착해서 국내 대형차 판매경쟁에서 지속적인 우위 확보는 물론 수출 전략형으로 한껏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광고 8, 9>에서 보듯이 그랜저XG 출시에 즈음하여 내보낸 인쇄매체 광고는 당찬 기술적 자신과 미래 청사진을 충분하게 읽게한 비주얼이 단연 돋보였다. 이런 광고들이야말로 안정기에서 보는 한국 자동차 광고의 한 전형을 제시한 것에 이외에도 소비자 니즈를 제대로 읽고 있다는 마케팅 반증으로 간주케 한다.

<광고8>

<광고9>

성숙기

2000년을 열면서 한국 자동차산업은 기로에 서 있다. 양적으로는 지난해 280만 대를 생산하여 1996년 이후 세계 5대 생산국 위치를 고수하는 반면 수출 1,000만 대 시대를 열었지만 설비과 잉투자로 산업구조조정과 맞물려 외국기업과의 M&A 등 시장 외적 상황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시장 포화에서 비롯된 성숙기다운 증후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마케팅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자동차 기술은 이미 보편화되면서 광고 이슈로의 가치나 기대는 멀어져 새로운 마케팅 전술적 접근을 요구하기 이르렀다.

이런 시장 요구는 국경 없는 디지털 경제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는 글 로벌 경영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나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규모가 크다고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를 구성한다고 해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환경이 요구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기업 운영과 체제, 그리고 마케팅 운영까지 글로벌적으로 재정비해서 지구촌 소비자 마인드에 좋은 기업 이미지부터 심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시장의 질서임과 동시에 마케팅 시장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숙시장에서 흔하게 보는 시장포화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눈을 좁은 국내시장에서 해외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겠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글로벌화는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기업 생존의 차원에서 수용하느냐 아니면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명암이 달라진다.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 4개사가 성숙기 시장을 맞으면서 소비자 니즈에 따른 글로벌 경영을 지향하는 마케팅 신호로 볼 수 있는 트라제XG 광고와 퓨전카 시대를 개막시킨 싼타페 광고에서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광고 10, 11 참조>

<광고10,11>

실제로 구조조정을 거듭해온 세계 자동차업계는 새로운 판짜기에 여념이 없다. 이른바 ‘빅6’의 시나리오는 설득력까지 얻어내고 있다. 르노가 닛산을,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미쓰비시를 인수함이 그렇다. 그들 빅6는 연산 400만 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가진 메이커로 자리를 잡았다. 규모의 경제에서 시장의 파이를 살려 존재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겠다는 마케팅 접근의 일환일 것이다.

여기에 성숙기에 접어든 한국 자동차업계가 풀어야할 숙제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니즈를 제대로 읽는 새로운 광고 전략이 한 해법이 될 것이다.

지금, 세계 자동차 광고가 변하고 있다

격변과 불확실성의 21세기를 열면서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너나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광고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소비자 니즈의 다양화와 개성화는 기술적 한계까지 극복하게 만들면서 빅6 시나리오에 따라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 벌어질 숨가쁜 레이스가 불가피할 전망이라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마케팅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필정 앞으로 자동차의 변천이 하이테크기술 발달과 맞물려 연료전지차, 환경친화형차, 레저카, 인터넷 시대가 필요로 하는 달리는 전자센터카 실현 등 실로 다양한 메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사회적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자동차 광고는 특화된 전략으로 소비자 니즈와 소비자 신뢰 심기를 키워드로 삼은 그런 광고들이 新조류를 이룰 것이 예상되고 있고 또 그렇게 이미 집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GM은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으로 네트워크 통합을 광고 전략에 맞추고 있고, 포드는 RV(레저카)시장 공략에 따른 마케팅에 돌입했다. 다국적 기업으로 출발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달리는 인터넷 자동차 시장 선점에 핵심역량을 모으고 있고, 폭스바겐은 골프와 파사트 출시에 따른 중국시장 공략에 들어갔고, 리노는 클리오를 앞세워 동남아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또한 도요타는 렉서스와 캠리의 명성을 엎고 유리한 고지에서 이들과 제휴를 통한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여기에 맞서고 있는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광고 전략은 세 지붕 네 가족(혹은 두 지붕네 가족)체제에서 빅6와의 공조 내지는 보조를 맞추어 세계시장을 향한 브랜드 파워를 키워드로 삼을 것이 예상된다. 60억 지구촌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은 소형차 수요층이 RV(레저카)로 급속하게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 파워 심기는 절대적일 것이다.

한국시장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런 시각에서 미루어 본 여러 전망들은 자동차 마케팅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일 뿐 아니라 <자동차 전쟁>의 조나단 맨틀도 ‘세계 지배를 둘러싼 마케팅 싸움’이라고 예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