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장형규/CR9팀 카피라이터
AE : 현대전자에서 걸리버 네오미를 새롭게 출시한답니다. 타깃은 N세대, 즉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래서 Concept은 ‘N세대가 선택하는 휴대폰’이 돼야 할 것 같은데…
CR : 다른 타깃층은 배제하는 겁니까? 가령 20대 후반이라든지…
AE : 20대 후반이라면 이미 PCS, 휴대폰을 다 가지고 있는 상황이죠!
CR : 그럼 요즈음 S사 휴대폰 광고 캠페인이나 M사 휴대폰 광고 캠페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긴데…
그랬다. 처음 시작부터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N세대를 타깃으로 한 걸리버 네오미 광고 캠페인을 어디로 이끌어 가야할 지 몰랐다. 더욱이 대부분의 광고 캠페인들이 N세대를 부르짖고 있는 마당에 우리까지 가세한다는 건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서 우리 기획팀과 제작팀은 N세대 고찰이라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시작했다. 바로 N세대를 잡는 것이 우리 걸리버 네오미 캠페인의 성공을 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N세대란 누구인가? 혹자는 지금 X세대를 지나 N세대가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X세대의 행동 동기는, 자기가 ‘하고 싶으니까 한다’라는 식의 ‘그냥’이라면, N세대의 그것은 ‘재미’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지 재미있으니까 한다는 것이다. 재미라 하면 너무 포괄적인 것 같고 그들의 의식주 전반을 살펴보자! 노래방에서 랩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랩 세대, 하루에 문자 메시지 400번 보낼 수 있는 문자 메시지 세대, 힙합 바지에 노랗게 머리를 물들일 줄 아는 힙합 세대, 스파게티 면발에 고추장 버무려 맛있게 먹을 줄 아는 퓨전 세대 등등등… 하지만 30대 차장님이 랩을 잘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N세대라 부르지 않고, 40대 부장님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고 해서 그를 N세대라 부르지 않는다.
그럼 진정 N세대는 누구인가? 결론은 N세대는 없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 텔레스 시대 파르테논 신전 벽에 써져 있는 ‘요즈음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낙서처럼 우린 너무도 N세대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N세대라고 하면 뭔가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 같은데 알고보면 우리의 과거 자화상이 아닌가? 우리가 20대 초반에 그랬듯이 지금의 20대 초반도 다양한 가치를 지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고, 우리가 20대 초반에 그랬듯이 몸떨리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기지개 펴는 그런 젊음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바로 예전의 N세대가 지금의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가치를 가진 20대 초반의 젊은 가슴을 우리는 어떤 화살촉으로 찌를 것인가?
요즈음 N세대에 있어서 휴대폰의 가치는 통화가 잘된다는 본원적인 가치를 넘어서 자기표현이라는 정서적인 가치로 변하고 있다. 우리 국민 4명당 1명이라는 휴대폰 사용인구에서도 알 수 있듯 휴대폰이 너무 흔한 이 시대에 N세대의 머리 속에 휴대폰은 필수품 개념의 악세서리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정서적 가치상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이 가지는 휴대폰의 위치는 이미 M제품과 A제품이 자리잡고 있었다. 즉, 자유분방하고 유행과 패션을 추종하며, 테크노 댄스에 열광하는 20대의 모습은 두제품의 모습이었다. 물론 우리도 그들처럼 ‘잘 나가는 N세대가 선택하는 휴대폰’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걸리버 네오미에겐 기존의 타 브랜드와 대비되는 우리만의 새로운 인식의 사다리가 필요했다.
일단 우리는 시대 조류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1999년 소위 잘 나가는 헐리우드 영화 일색의 영화들 속에 순애보적인 ‘접속’이 총 148만 관객을 동원해 히트를 치고, 사라 본의 OST, ‘A Lovers Concerto’가 전국의 번화가에 울려퍼진 이유는 무엇일까?
댄스곡 일색의 가요 속에 랩 하나 안 들어간 발라드 가수, 조성모의 음반이 수백만장이나 팔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시대적인 조류의 중심에는 우리의 N세대가 한 몫 했음은 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N세대 속에는 잘나가는 세대로서의 주류문화와 그에 대비되는 대항문화(Counter Culture)가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유분방하기보단 때로는 밤새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젊음, 테크노 댄스와 랩음악에 열광하기보단 순애보적인 영화에 감동받고 애절한 발라드에 심취하는 젊음. 이들이 바로 다양한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는 N세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N세대의 고찰 속에 우리 캠페인의 중심 크리에이티브 테마를 순수한 사랑으로 정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먼발치에 서서 말없이 가슴 태우는 순수한 사랑 하나쯤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N세대의 모습을 그려 나가기로 했다. 타 경쟁 브랜드가 화려함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은은함이란 의미에서 걸리버 네오미의 Brand Personality 또한 ‘순수’로 결정하였다.
누구나 눈을 감고 아무것도 몰랐던 젊은 날의 사랑을 회상해 보자! 그 사랑은 장미빛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현실 속의 사랑을 가감삭제 편집한 형태로 기억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뮤직 비디오에서 나오는 사랑은 얼마나 황홀한가! 처절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마저도 그렇게 멋있고, 그의 사랑 또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기왕에 순수한 사랑을 그릴 바엔 제작팀도 뮤직 비디오처럼 눈에 띄고, 귀에 쏙 들어오는 TV-CM을 만들고 싶었다.
마치 상업적인 메시지를 배제하고 CM시간대에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할 시간을 소비자에게 선사하려 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곡 선곡과 프로덕션 선정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스토리보드가 제작팀, 기획, 광고주의 손을 왕복한 결과 ‘첫눈에 반했다’편이 최종 선정되었다.
1차 TV-CM ‘첫눈에 반했다’는 토이의 곡,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를 BGM으로 하여 첫눈 오는 거리에서 촬영을 시작하였다. 정말 첫눈에 반할 만큼 멋진 남자를 본 여자의 미묘한 심정.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싶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어쩌면 우리 가슴속에 한 번은 묻어두었을 법한 젊은 날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뮤직 비디오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처음 ‘첫눈에 반했다’편이 나간 이후 반응은 뮤직 비디오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TV-CM이어서 참신했었다는 반응과 BGM을 부른 가수와 그 곡이 실려있는 음반의 제목이 무엇이냐는 질문들이었다. 생각보다는 좋은 반응들로 걸리버 네오미의 기획과 제작팀은 조마조마한 심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눈내리는 계절을 지나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봄무렵까지 제작팀은 다음 TV-CM을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미 방송중인 1차 TV-CM이 망설이는 젊음이라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만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게 선택된 안이 2차 TV-CM ‘춘천가는 기차’편이다. 기존의 크리에이티브 테마대로 처음보는 사이라도 ‘나 너 좋아해!’라고 무턱대고 말하는 젊음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들어가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그리려고 의도하였다.
물론 이때도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BGM으로 사용하여 뮤직 비디오처럼 표현하였다.
두 TV-CM을 제작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는 첫번째, 제작에 협조했던 두 회사가 모두 TV-CM 덕을 확실히 봤다는 사실이다. ‘첫눈에 반했다’편의 경우, 토이의 음반 이 TV-CM으로 on-air된 후 비약적으로 판매량이 늘었고, ‘춘천가는 기차’편의 경우, <상실의 시대>란 책이 교보문고 외국서적 판매부문 1위를 몇달동안 차지하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두가지 다 걸리버를 우리 타깃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시키는 오브제로 작용할 것이다. 두 번 째 에피소드는 관심있는 시청자는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두번째 TV-CM안 선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봄인데도 불구하고 브라운관에는 1차 TV-CM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걸리버 네오미 TV-CM 2편이 하나의 캠페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처음 N세대가 선택하는 휴대폰이라는 컨셉 아닌 컨셉을 받았을 땐 도저히 N세대를 파고들 빈틈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N세대에 대한 연구 끝에 순수한 사랑이라는 크리에이티브 테마로 두 편의 TV-CM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우리 기획팀과 제작팀은 마음 속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사이버라든지 잘나가는 N세대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도 N세대의 내면으로 접근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테마를 만들어냈다. 더구나 ‘첫눈에 반했다’편의 경우 사내에서도 우수상으로 뽑혀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듯 했다.
이제 순수한 사랑을 크리에이티브 테마로 한 1여년간의 캠페인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걸리버 네오미의 TV-CM이 On-air되고 있다.
이 TV-CM 또한 이전의 두 TV-CM 캠페인의 성공을 등에 업고, N세대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는 TV-CM으로 자리 매김하였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