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양웅/CR9팀 부장
겨울이면 우리나라에도 눈이 많이 온다. 그런데 눈은 어떻게 해서 내리게 되는 걸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기온이 매우 낮을 경우 구름 속에 함유된 수분을 비의 상태로 땅에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가벼운 눈송이가 되어 지표면에 떨어지게 된다.
매우 낮은 기온에서는 구름의 물방울이 초저온 상태가 되며,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초저온 상태의 물방울이 증발하고 그 수증기가 바로 얼게 되어 미세한 얼음의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결정에 더 많은 수증기가 얼어붙음으로써 점차 커져 눈송이를 이루게 된다.
눈송이의 모양은 왜 각기 다른 것일까? 과학자들은 눈송이의 모양은 대기의 기온과 수분의 양에 따라 모양이 각기 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눈이 오면 주위가 조용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눈송이의 약 90%가 공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로 인해 눈이 매우 뛰어난 절연효과 및 방음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눈의 양이 비의 양과 같을까?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10㎝의 적설량이 1㎝의 강우량과 수분함량으로 보아 같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매우 차가운 대기층을 통과하는 동안 얼음덩이나 진눈깨비의 상태가 되어 지표면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때 물방울이 매우 차가워지게 되면 부딪치는 모든 물체를 유리질의 얼음이 뒤덮게 되며 이로 인해 얼어붙을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진눈깨비라는 것이다.
우박은 이와는 달리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뇌운(雷雲)의 상층부에서 생기는 것으로 얼음덩이가 상승기류와 하강기류를 번갈아 탈 때 얼음층이 덧붙여져서 점점 커지게 되며 생성되는 것이다. 우박의 크기는 구름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오르내렸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눈의 물리적 특징은 첫째로 그것이 흰색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색깔의 특징은 눈이 흰색과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다음으로 눈은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징과 추운 지방에서 많이 내린다는 특징에서
고난이나 시련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는 물이
갖는 상징성과 마찬가지로 생명과 풍요 등 을 뜻한다고 하겠다.
눈이 하얀 이유는 광선이 작은 가루 속으로 들어가서 통과하지 못하고 표면에서 광선을 여러 방향으로 무질서하게 산란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눈에만 흰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눈의 흰빛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하얗게 내린 눈은 그 빛깔이 희다는데서 순수와 공백 등을 상징한다. 옷감 같은 것이 흰색일 때 우리는 눈처럼 희다고 말하는데 흰색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눈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눈은 백색과 혼용되어 마약이나 헤로인 같은 백색의 가루약을 뜻하기도 한다.
첫눈을 손으로 받아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손으로 받아 씻으면 피부가 고와진다는 속신(俗信)이 있는데 이는 눈이 희고 부드럽다는데서 비롯된 믿음일 것이다.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여겨지는 백두산(白頭山) 역시 산머리에 흰눈이 쌓여 있는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새하얀 눈밭은 전혀 때묻지 않은 순결의 의미로 이어진다. 영화 ‘오! 수정’에서 표현한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남자들의 집착을 보여주는 듯한 Aspen 스키장 광고는 비주얼의 대부분이 그야말로 새하얀 설원이다.
오른 쪽 귀퉁이에만 그 순백의 순결을 짓밟고 지나가는 스키어가 등장한다. 엄청난 흠집을 남긴 채. ‘처음 자국을 낼 권리. 그것을 깨운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가. 내일이면 설원을 내다보며 알게 될 꺼야. “너도 어제 분명 여기 있어야 했어”라고 말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너라는 것을.’ 아무도 흠집을 내지 않은 순결한 스키장을 네가 먼저 정복하고 내일 그 황홀한 경험을 남들에게 자랑하라는 내용인 것이다.
이렇듯 눈은 흰색에서 느낄 수 있는 순결을 뜻하며 이는 눈이
흰색이라는 일차적인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스키장을
제일 먼저 내려온 사람은 정말 그런 기분을 느낄까?
눈은 흔히 꽃을 의미한다. 눈꽃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가지에 쌓인 눈을 꽃으로 보는 정서는 시와 산문 등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정서이다. 이 역시 눈이 하얀색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상징성이라고 하겠는데 쌓인 눈의 형태가 꽃송이와 유사하다는 특징에서도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눈은 꽃이 가지는 상징성과 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정서는 바로 사랑일 것이다. ‘새벽부터 미치게 함박눈이 퍼붓고 있다. 끝까지 오거라, 눈이여! 젊음의 기개와도 같고, 사랑의 축가와도 같이.’라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한 구절처럼 눈은 사랑의 노래, 젊음의 기개, 사랑의 축가로서의 이미지가 흰색의 순수 이미지와 뒤섞여 있다.
눈이 이런 사랑의 의미를 담는데는 그것이 부드럽고 온화한, 순수한 이미지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걸리버 네오미 광고에서 설정된 눈오는 날 역시 젊음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해 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멀리 바라만 보는 순수한 심상의 표상이 바로 눈인 것이다.
카카오레 광고의 눈오는 날 역시 젊은 남녀와 함께 눈이 등장한다.
아울러 이 광고에서 눈은 그들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온화함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눈은 추운 겨울에 내리지만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타내는 상징의 이중성을
보인다.
하얀 순수의 눈은 바로 동심과도 연결된다. 어린 시절 눈사람을 만들거나 편을 나누어 눈싸움을 하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동심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삼성전자의 기업PR 광고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시골의 빨래터이다.
정감이 넘치는 동화 스타일로 그려진 비주얼은 하얗게 눈 쌓인 자연의 풍경으로 한껏
동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광고에서 역시 눈은 추운 겨울 따뜻하게 느껴지게
하는 온화함을 함께 지니고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보리를 푹 덮게 되면 보온이 되어 보리가 얼어죽거나 고사되는 일이 없어져 풍작을 이루게 된다는 의미이다. ‘눈은 보리 이불이다’라는 말도 그런 뜻이다.
‘눈 많이 오는 해는 풍년이 들고, 비 많이 오는 해는 흉년이 든다’는 말은 눈이 많이 오면 그 눈이 녹으면서 지하로 깊이 스며들어 봄 가뭄에 도움이 되므로 풍년이 들고, 여름에 큰 장마가 들면 수해로 흉년이 든다는 뜻으로 눈은 풍년의 징조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아울러 눈은 비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 신화적 의미에서도 풍요와 길상(吉祥)을 의미한다. 희망의 징조인 것이다. ‘시집가는 날 눈이 오면 길하다.’는 속담은 시집가는 날 눈이 와서 천지가 희고 깨끗하게 되는 것은 길조라는 뜻으로 눈을 상서(祥瑞)로 여겼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눈이 자주 내린다. 이는 모든 것을 하얗게 순화하여 뭔가 새로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도구인 셈이다.
삼성화재의 기업PR 광고는 자사의 재정적 견실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사람이 연말연시의 계절성에 기인하긴 하지만 이
광고에서 역시 눈은 풍요로운 삶의 징표인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희망의 서곡으로 새로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눈은 살아 있다 /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김수영의 시 ‘눈’은 마치 에비앙 광고를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인물과 눈 쌓인 알프스를 위아래 대비적으로 배치한 에비앙 광고는 그녀들의 내면적 가치와 그녀들이 마시는 물, 에비앙을 교차적으로 말하고 있다.
첫번째 광고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살아 있는 초월적 존재를 ‘수퍼히어로’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빠르고 강하며 그녀를 구원해 주는 존재이다. 곁 모습으로 드러난 그녀가 표면구조라면 ‘수퍼히어로’는 심층구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기저구조로 들어가 보면 거기엔 에비앙이 있다. 비주얼 배치를 위아래로 한 것 역시 이 광고의 메시지가 이런 단층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퍼히어로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건 알프스에서 온 자연의 순수함을 담은 물, 바로 에비앙인 것이다.
두 번째 광고 역시 같은 문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엔 단지 장미꽃 향기를 맞는 대신 길가에 난 들꽃들의 향기를 맞고 싶은 내면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런 꿈을 키워주는 변함 없는 생활의 활력, 그것은 바로 알프스에서 온 생수 에비앙이라는 것이다. 단지 육체적인 생명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생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에 나타난 눈의 가장 흔한 상징성은 역시 고난과 시련이다. 이는 눈이 자연현상으로서 재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폭설은 사람들에게 많은 시련을 주기 마련이다. 작게는 도로에 쌓이는 눈으로 길이 막히고, 산에 쌓인 눈은 사람들의 발길을 막는다. 이런 눈은 고난과 시련의 대상인 동시에 그만큼 사람들의 도전의식을 고취, 극복해야할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눈은 스포츠와 관련된 제품이나 자동차 - 특히 4륜 구동 - 광고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가장 거친 오프로드 테스트가 아니라는 지프 광고는 설산의 거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Quantum 시계 광고 역시 눈 쌓인 거친 산들로 에워 쌓인 얼어붙은 호수이다. 그곳에 작은 깃발이 꽂혀 있는데 그 얼음 속으로 사람이 들어간 모양이다. ‘아무리 깊은 곳, 그 어디라도’라는 카피가 깃발 옆에 붙어있다.
나이키 스포츠화 광고에는 눈오는 날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도로 위로는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는데 그 길을 가로지른 듯 발자국이 찍혀있다. 결국 나이키 신발이 신고 달리면 이렇게 빨리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과장된 표현이다. 물론 이 광고에서 눈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한 방법으로 동원되었는데 눈 오는 날 자체가 더욱 달리기 힘든 시련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택배회사인 PTT 광고의 눈 오는 날 설정도 고난과 시련을 뜻한다. 눈이 오면 그만큼 화물을 배달하기 힘든데 이에 굴하지 않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를 카피 대신 위도와 경도의 좌표를 써놓고 있다.
눈의 상징성은 이중구조를 이룬다. 차가움과 냉혹함을 뜻하는가 하면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뜻한다. 순수와 생명력, 풍요와 희망을 나타내는가 하면 고독과 죽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랑과 순결을 말하는가 하면 불감증을 말하기도 한다. 결백과 의리, 거룩함과 신성함. 그런가 하면 고난과 시련도 버티고 있다.
초등학교 꼬마의 책상 위에 붙여 놓은 듯한 하루 일과표를 그려 놓은 지프 광고에서 눈쌓인 산은 이런 눈의 상징성이 지니고 있는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눈은 고통과 어려움이지만 그 희고 밝음은 우리에게 일상의 새로운 심호흡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지프가 있으면 생활에 그만큼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도시에서도 지프를 운전하는 시간 만큼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무척 신비로우며 땅 위에 내려서도 단념하고 땅에 어울리지 못하는 물질이다. 풍경을 덮어 버리는 그 유달리 흰빛이 밉살스럽다. 게다가 차가워서 생명을 거부한다. 눈이 생명을 보호하여 준다는 것은 나도 알지만, 그러나 생명은 눈을 녹이고서야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의 ‘지상의 양식’에 나오는 구절이다.
눈은 눈인데 눈이 아니다. 분명 물과도 다르고 얼음과도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면 같기도 하다. 둘이 아니라는 게, 다르지 않다는 게 하나이거나 같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의미가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