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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의 건강

올바른 약물 복용

선우성 /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약물이 의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약물은 의사가 환자를 위해 취하는 조치 중에 가장 흔하고도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잘못 쓰일 경우에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일반적으로 약물의 복용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약, 특히 양약을 너무 무서워해서 문제이고 어떤 사람들은 약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60세의 농부 아저씨가 보름 전부터 오른쪽 팔,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증상을 호소하며 내원하였다. 이 환자는 40대 후반부터 약 5년 전까지 계속 동네 의원에서 고혈압으로 잘 치료받던 환자였는데, 최근 약 5년간은 아무 약도 복용하지 않고 가끔 보약만 지어 드셨다고 한다. 혈압을 재어 보니 230/120mmHg으로 매우 높은 수치였고 간단한 신경학적 검사상 좌측 뇌의 중풍(뇌졸중)이 의심되는 소견이었다.

“왜 몇 년간 혈압약을 안 드셨습니까?”
“혈압약을 계속 먹으면 안 좋다고 해서…”

너무도 안타까운 말이었다. 어떤 누구의 책임없는 말 한 마디와 이 아저씨의 판단 능력 부족이 빚은 비극이었다. 이 아저씨는 중풍과 심근경색증의 예방을 위해 꾸준히 혈압약을 복용해야 했던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주위의 권유로 약을 끊게 되었고, 몸 속에서는 증상 없이 동맥경화가 계속 진행하여 결국은 풍에 걸려 우측 팔, 다리 기능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 안타까운 경우이다.

49세의 여자 환자가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는 것을 주소로 찾아 왔다. 특별히 의심되는 질환은 없었으나 기본적인 검사를 시행해 보니 간기능이 매우 안 좋았다. 환자를 급히 입원시키고 간염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였다. B형이나 C형 간염에 걸린 상태는 아니었고 술을 많이 먹지도 않는 환자였다. 이 환자에게 혹시 최근에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느냐고 물어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환자는 3년 전부터 복용해 오던 당뇨약과 약국에서 처방받은 소화불량에 대한 약들, 1년 전부터 추가된 갱년기 질환 치료제에 최근 관절이 아파서 정형외과에서 받은 관절염 약 등 하루 20알이 넘는 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2주일 전부터는 멀리서 사는 효자 아들이 보내온 보약까지 같이 먹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약을 같이 드시면 어떡합니까?”
“어차피 다 몸 좋아지라고 만든 약인데, 뭐”
“체중도 많이 나가시는데 보약은 또 왜 드셨어요?”
“의사 양반, 한약하고 생약은 부작용이 없다는 거 몰라?”

결국 이 환자는 약물중독성 간염으로 진단되어 당뇨약을 제외한 모든 약을 다 끊고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간기능이 회복됐다.

이 정도쯤 되면 약은 투약 본래의 취지를 떠나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여러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할 경우에는 약물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그 효과가 줄어들거나 증폭된다. 또, 대부분의 약들이 간을 통하여 대사가 되므로 간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위의 아줌마 환자의 경우에는 각 증상이 있을 때마다 서로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따로따로 약을 처방받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환자의 각 증상들을 치료하는 여러 명의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런 여러가지 증상을 가진 환자 자체를 돌보아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의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환자의 경우, 갱년기약을 복용하면서 당뇨약은 간이 아닌 신장을 통해서 주로 배설되는 약으로 바꾸고 소화계통의 약은 한 알 정도만을 처방받고 관절통은 물리치료로 대치하고, 한약의 복용은 잠시 미루고 관절증상과 소화계통의 약 복용이 모두 끝난 후에 복용했으면 간염까지 초래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러한 약물 오남용의 반대쪽에는 첫 번째의 농부 아저씨같이 약물의 복용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혈압약, 당뇨약 처방을 새로 시작하기가 정말 어렵다. 평생 먹는다는 이유를 들어서 계속 복용을 미루려고만 한다. 또, 신경정신과 계통의 약물에 대해서는 너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안정제’나 ‘우울증약’은 무조건 안 먹으려는 경향이 있다. 일단 약을 먹기 시작하면 중독에 걸린다거나 약을 끊을 수 없거나 약이 뇌세포를 파괴하여 정신을 멍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약은 안 먹을 수 있다면 안 먹는 것이 최선이다. 또, 약 중에 일부 부작용이 생기는 약들도 있다. 하지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평생을 치료해야 하는 질병의 치료약들은 대부분 중한 부작용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라. 평생 먹을 약을 만들었는데 조금만 먹어도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면 그 약을 어떤 의사가 권하고 어떤 환자가 먹겠는가? 그런 약은 만들지도 않겠지만 만들었어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꼭 먹어야 할 약이 있다는 것이다. 약을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확률과 약을 안 먹어서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위험을 잘 비교해서 꼭 먹어야 할 약들은 반드시 복용하도록 한다. 따라서 약의 복용은 혼자서 결정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풍문에 좌우되거나 인터넷이나 매스컴에 따라 괜히 부화뇌동하지 말고 담당의사와 충분히 상의하여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약물 복용에 대해서는 자신을 잘 아는 단골의사와 잘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나 홀로 결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첫 번째 경우의 아저씨처럼 한쪽 팔다리를 잃을 수도 있고, 두 번째의 아줌마처럼 오히려 약에 의한 질병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물 복용에 대해 환자들이 가장 흔하게 묻는 질문 두 가지를 추가한다.

Q : 양약을 오래 먹으면 위장을 버린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모든 약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최근에 나오는 약들은 위장장애가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을 조절하는 약들은 그 자체가 거의 평생 복용을 전제로 개발되기 때문에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뭅니다. 일부 관절염 약이나 항생제 중에 속 쓰림을 유발할 수 있는 약들이 있으나 이것도 개인 차이가 많고 약물을 끊으면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의사와 상의해서 약물을 조절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간의 위장장애를 감수하더라도 꼭 먹어야 할 만큼 자기 몸에 아주 중요한 약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Q : 고혈압 약은 먹기 시작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약을 안 먹고 있는데요?

그러다가 큰일 날 수가 있습니다. 평생 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혈압은 꼭 평소에 정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맥경화증이 점점 진행하여 몇 년 후에 풍이나 심장병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약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꼭 복용을 시작하십시오. 혈압 조절이 잘 되기만 하면 점차 줄이다가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경우가 환자 10명 중에 한 명 꼴도 안 되므로 크게 기대하지는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