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t DATA_HOME $env(UNIWEB_DOC_ROOT) source $DATA_HOME/init.appl ] 행복한 책읽기 | 연어

행복한 책읽기 | 연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
어른을 위한 동화 - 연어, 안도현

배성우 / 기획4그룹 대리

 

동화(童畵)라는 단어 속에는 지나간 날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난다. 동화라는 단어 속에는 잃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도 묻어 난다. 동화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시절 뛰어다니던 운동장이 내 눈 앞에 있는 것 같고, 밤새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이솝의 이야기와 플루타르크의 영웅들 이야기, 그리고 젊디 젊은 시절의 어머니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또한 동화라는 단어는 언제나 동요(童謠)라는 단어와 함께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의 그리움과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그러나, 한 살 두 살,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동화와 동요라는 단어를 말할 기회도, 볼 기회도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어느덧 순수라는 말은 그저 광고의 카피이거나 영화 포스터의 제목 정도로만 생각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아주 우연히 '어른을 위한 동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친구의 소개에 의해서 였는데, 그 친구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소제목이 붙은 책을 전해주는 순간 왠지 모르게 이런 책을 읽고 선물할 줄 아는 그 친구가 다른 어떤 누구보다 어린 시절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과연 우리 주변의 몇 사람이 '동화'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읽고 있을까? 세간의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보면 시답잖은 팬터지 소설이나 재테크와 관련된 책이 반이요, 그도 아니면 유명인이 쓴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들이니 '동화'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잡을 일은 애초부터 없을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어른을 위한 동화 - 연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더군다나 책의 저자인 안도현이라는 사람은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라,(윤도현을 알고, 안치환을 알지만 안도현이라는 이름은 정말 몰랐다) 책을 좋아한다고 평소에 생각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심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작가가 쓴, 이름도 모르는 책이라…

그런데 또 한가지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한 것은 책의 맨 뒷 장을 넘겨본 후였다. 필자는 습관적으로 책을 사면 책의 발간 일자와 출판사명, 주소 등을 설명해 놓은 장을 펼쳐 본다.

습관적으로 발간 일자를 보는 이유는 책이 나온지 얼마나 된 책인지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 첫번째요, 두번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관심을 가지는가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발간 일자가 있는 장에는 흔히 발간 일자와 함께 몇 판 몇 쇄 인지가 함께 나와있다. 만약 한 책이 1판 1쇄를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1판 40쇄 정도를 찍었다면 그 책은 단기간에 높은 인기를 얻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책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1판 2쇄 정도나 되었거나 1판 1쇄가 그대로 서점에 비치되어 있는 책이라면 일반 대중이 찾지 않은 그래서 아직은 진흙 속에 묻힌 보석같은 책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평소의 경험을 비추어 보건대 당연히 '연어'라는 책은 아직도 1판 2쇄나 1판 3쇄 정도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을 과연 몇 명이나 찾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뒤집듯 1996년에 발간된 이 책은 1판 37쇄에 이어 2판 42쇄까지 발간된 스테디셀러였던 것이다.

이것을 본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화를 멀리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것은 아닌데 나를 미루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고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나를 미루어 전체를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어느새 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심히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렇게 우연히 그리고 부끄럽게 시작된 이 책 '어른을 위한 동화 - 연어'와의 만남은 잊고 있던 '동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너무도 많이 잊어버리고 있던 진정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연어'라는 책 자체가 단순한 이야기책이 아니라 동화라는 형식을 빌어 우리가 너무도 많이 잊고 있던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마치 하나의 설법서 같은 책처럼 느껴졌을 정도이다.

사실 동화책은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하여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순수함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이들은 세상에 찌들지 않아 인간의 본래 순수함이 그대로 있으니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 순수함이 더욱 증폭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무위자연의 본성이 가장 충만한 나이가 어린 시절이라고 얘기했으며, 불가에서도 어린이의 마음 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연어'라는 책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은빛 연어'라는 은색의 비늘을 가진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면서 겪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돌아가는 도중에 '은빛 연어'는 사랑을 하게 되고, 역경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게 되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 스토리가 아니다. 연어가 사랑을 하게 될 때, 역경에 부딪칠 때, 자기 삶의 의미를 생각할 때의 모습이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보여지고 책에 쓰여져 있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은빛 연어'는 강으로 여행하는 도중 자기를 항상 돌보아 주던 '누나 연어'를 물수리의 공격에 빼앗긴 후 '눈 맑은 연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눈 맑은 연어'를 만난 후 '은빛 연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 전까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분명 같은 물이고 같은 해초이고 같은 돌인데도 '눈 맑은 연어'를 만난 후에는 달라 보이는 것이다. 의아함을 느끼는 '은빛 연어'에게 '눈 맑은 연어'가 얘기한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이 아름답단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야"

그렇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겉모습에 취해서, 배경에 취해서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분명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설레임,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이로움에 취해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싶어하고 평생을 사랑이라는 단어에 취해 살고 싶은 것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의 단어는 '설레임'이다. 설레임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니 평생 사랑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평생을 하루 하루를 설레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을 사는 기쁨이 얼마나 벅차겠는가? 고인이 되신 모회장님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하루동안 만나게 될 세상, 사람들과 나누게 될 이야기, 새로운 일들로 인해 가슴이 설렜다 하니 그 분의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가히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 '은빛 연어'는 초록강과 삶의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힘들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연어의 삶에 대하여 '은빛 연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초록강은 이런 '은빛 연어'에게 이유 없는 삶이란 없다고 말하며 초록강 자신의 삶은 여기에 있음으로써 타인의 배경이 되어주고 남을 감싸주는 것으로 충분히 의미있다고 말해준다.

'배경'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속된 의미의 '배경'을 말고 말이다. '은빛 연어'는 그 '배경'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기 때문이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며, 연어 떼가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라고.

'배경'이라는 말 속에는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하나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의미가 듬뿍 담기어 있다. 그리고 '배경'이라는 말 속에는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있다.

'슬램덩크'라는 유명한 만화가 있다. 본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만화의 후반부에 주인공인 북산고는 전국 챔피언 산왕공고와 맞붙는다. 이 시합에서 북산의 기둥 센터 채치수는 산왕공고의 센터에게 하릴없이 밀려 결국은 플로어에 쓰려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때 채치수의 라이벌 변덕규는 쓰러진 채치수에게 무우를 하나 둘 썰어 준다. 횟감을 돋보이게 하는 무처럼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말고 동료들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되라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이다.

초록강과 '은빛 연어'가 나누는 '배경'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읽으면서 필자는 바로 '슬램덩크'의 이 장면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심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연어'와 '슬램덩크'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물론 '은빛 연어'가 간절히 원하듯 다른 어떤 사람의 '배경'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힘들게 폭포를 거슬러 올라 알을 낳고 삶을 마감하려는 '은빛 연어'에게 '눈 맑은 연어'가 묻는다. 너는 삶의 이유를 찾았느냐고.

'은빛 연어'는 대답한다.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희망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오라기의 희망도 품지 않고 사는 다른 연어들에 비하면 행복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은빛 연어'가 깨달은 것처럼 실상 삶의 의미란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루 하루의 행복에 기뻐하며 한 사람의 사랑에 기뻐하는 그런 삶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본인 자신이 얼마나 지금의 삶에 의미를 가지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느냐 하는 것이다. 위를 보고 사는 사람일수록 삶은 더욱 피곤하다.

희망이란 것도 그렇다. 희망이 이루어져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 삶은 행복하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하루 하루를 소중히 보내며 또 희망을 향해 다가가는 그 하루 하루가 너무나 행복하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세상을 어둡게 할 온갖 질병과 재앙들이 날아간 자리에 인간을 위해서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매일매일 삶의 의미가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어릴 때는 내일 또 친구들과 공을 찬다는 기쁨만으로, 세 밤만 자면 소풍 간다는 기쁨만으로 하루 하루가 즐겁지 않았는가? 첫 사랑을 만난 설레임으로 세상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경험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경험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다 해보았을 것이다.

이런 모든 생각과 경험들을 잊어버리고 높은 것만을 모두가 찾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스스로 좌절하며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어릴 때의 하루 하루를 다시 되살려본다면 의미 없는 삶이라 한숨 지을 일은 없을 것이다.

'동화(童畵)라는 단어 속에는 아련한 그리움과 순수함이 묻어 난다. 때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 한 편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연어'라는 책은 나에게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 - 연어'를 나에게 전해준 그 친구는 어쩌면 나보다 먼저 동화가 전해주는 삶의 가치를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삶에 지친 내가 '은빛 연어'처럼 다시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그 친구에게 전화라도 한 통화 해야겠다. 고맙다고 그리고 너 같은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