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교실

관객 1,000만 시대의 영화산업의 위상과 과제

최호정 / 매체기획1팀 국장

 

1. 관객 1,000만 돌파의 의미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 1,000만을 돌파함으로써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새로운 성장국면에 진입했다.

불과 10년 전 '서편제'가 우리나라 영화 관람객 동원에 있어 '마의 벽'이라 불린 100만을 돌파한 이후 '마의 벽'은 달성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대상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관객 1,000만의 가장 큰 의미는 단일한 문화 상품이 산업적 규모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규모의 경제의 실현이 가능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한국영화산업의 규모는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미만이며 미국 메이저영화사 규모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의 외형을 갖고 있어 산업으로서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두 영화의 흥행기록은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하나의 계기(Trigger)가 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문화상품에서 1,000만이란 판매숫자는 가요계에서 조용필, 김건모, 조성모 등이 통산 음반 판매량에서, 출판계에서 '태백산맥'과 '이문열의 삼국지'가 전질을 기준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이 단일한 문화상품이 단기간에 걸쳐 이룩한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하겠다. 이러한 1,000만 관객 동원은 국내 영화산업의 문화소비자에 대한 흡인력의 증대라는 측면과 함께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소비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의 반영의 결과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2. 1,000만 동원의 힘은 어디서 나왔나

한국영화의 1,000만 동원의 힘을 4P라는 마케팅 수단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수한 제품(Product)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젊은 관객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는 6.25라는 소재와 형제간의 우애라는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적절한 감정 조절 속에 감동을 자아내는 내러티브 구조 속에 녹여 넣음으로써 관객의 몰입을 가능케 하여 소비자의 만족도를 제고하고 이에 따른 자발적 입소문을 통해 연쇄적 관객동원을 가능케 하였다. 특히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가 갖는 경쟁우위 요소인 스팩터클한 볼거리 측면에서 대등하거나 우월한 평가를 받음으로써 한국영화의 제품력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강제규, 장동건, 원빈이라는 스타 파워가 뒷받침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강제규 감독은 국내 감독 중 관객 동원력이 가장 높은 감독(금강기획 2003.11월 소비자 조사)으로서 감독의 관객 동원력이 관객 동원에 큰 힘이 되었다.

이처럼 경쟁력 있는 우월한 제품력이 1,000만 고객 돌파의 첫째 요인이라 할 것이다.

둘째로 다양하고 용이한 접근 가능성을 제공한 유통(Place)의 힘도 큰 역할을 하였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과거처럼 접근에 대한 불편이나 매진이라는 제품구입 불가능 상황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단기간에 기록적인 관객동원을 가능케 하는 산업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과거 '서편제 신드롬'으로 불리는 흥행 돌풍의 과정에서도 암표와 2~3시간 줄을 서는 열악한 유통환경이 더 이상의 관객 동원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멀티플렉스의 존재 자체가 1,000만 동원을 가능케 한 중요한 요인임을 부정하기 어려우며 200~400개 관 동시개봉이라는 광역개봉(Wide Release)의 개봉 방식이 단기간에 1,000만 동원이라는 관객 동원의 기간 단축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보여진다.

셋째로 프로모션(Promotion)의 힘을 들 수 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경우 일정관객을 동원하면서부터 사회적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을 중심으로 프로모션을 행함으로써 상기 영화 관람 여부를 사회적 준거화하여(이들 영화를 안보면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는 분위기 조성) 영화 비소비 계층인 40~50대 층을 영화관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 관람 가능 인구상 이들의 동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매직넘버를 채우는 기능을 하였다.



3. 관객 1,000만 동원의 경제적 효과

관객 1,000만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한국은행은 생산 유발액이 1,350억원, 부가가치 유발 액은 594억원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았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실미도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3,000억 이상이라는 진단을 내놓은 바가 있다. 순수한 영화산업 측면에서의 경제적 효과를 '태극기 휘날리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국내 흥행수입 700억원(7,000×1,000만 기준)과 해외수출액 150억원(미니멈 개런티를 포함하면 이 금액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와 DVD, OST, 캐릭터 등을 포함한 후방산업에서의 수입금액을 포함하면 대략 90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되어 웬만한 중소기업의 1년 매출을 상회하는 매출규모를 시현하고 있다.

이 중 극장 수입 분을 제외한 600억 정도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보여 제작비 190억원(순 제작비 150억원)을 투입해 그 3배가 넘는 영업이익을 거둠으로써 영화산업이야말로 진정한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유형의 경제적 가치 이외에 무형의 브랜드 가치 또한 이에 육박하는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쌍둥이 흥행 대박'은 '한국영화'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국내외에서 크게 높일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가치는 브랜드 충성도 즉 '소비자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는 마음 상태'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브랜드 가치의 증대는 장기적인 수익과 경쟁 우위를 가져오는 원천이다.

한국 영화의 브랜드 가치의 증대는 첫째 국내외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호 증대와 외국영화와의 경쟁에서의 경쟁우위 확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며 또한 부수적으로 국외에서 '코리아'라는 브랜드에 대한 가치를 제고하고 한국과 한국산 상품에 대한 선호도의 증대를 가져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둘째, 영화산업 전반의 활성화와 함께 생산(영화제작사, 배급사 등)의 유통(극장)에 대한 역학관계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 영화계는 '유통의 생산에 대한 지배'로 요약될 정도로 극장이 영화제작, 배급사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수익 배분에서도 이러한 역학 관계가 반영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쌍둥이 1,000만 시대는 이러한 역학관계를 대등하거나 오히려 유통을 압도하는 역학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의 증대를 가져오고 자금조달의 용이와 조달비용의 감소로써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이익 증대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영화계는 '쉬리'나 '친구'의 흥행 이후 무모한 블록버스터 영화제작과 흥행 참패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플래너스의 분할, 싸이더스의 매각이나 명 필림과 강제규 필름의 MK버팔로의 우회상장 등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으며 준비된 영화제작의 차질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흥행 대작의 연이은 탄생은 이러한 열악한 Financing 상황을 타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며 영화 제작의 활성화와 함께 Financing Cost를 크게 낮춤으로써 영화산업의 수익성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우수인력의 영화산업으로의 유입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 동안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영화산업 참여 이후 많은 우수한 인력이 영화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한국영화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였는데 대작 영화의 흥행성공을 통해 영화를 산업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인식하는 우수한 인력의 유입을 가속화하여 영화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4. 향후 과제

향후 한국 영화산업의 과제는 크게 수요의 확대와 안정적 수익구조의 확보, 그리고 영화자체의 경쟁력 강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제작비 현실에서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협소한 내수시장의 확대와 함께 이를 보완할 대체시장으로서의 대외시장의 개척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시장이 성숙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러한 해외시장 개척의 성패는 영화산업 규모의 확대와 이에 따른 규모의 경제의 실현, 영화산업에서의 리스크 감소와 안정적 수익구조의 정착을 통해 영화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문화 정서적 측면과 영화 자체의 경쟁력 측면에서 미국, 유럽 시장 등을 단기간에 침투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문화적 유사성이 강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시장을 우선적 공략 대상으로 설정하여 개척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들 시장을 염두에 둔 기획에 필요하며 이 시장에서 수용될 수 있는 스타를 발굴,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현재 게임, 캐릭터, 음반, 출판, 관광상품 등 영화의 후방산업의 활성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영화산업에서 극장 흥행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며 수익의 50% 정도가 이러한 후방산업에서 창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영화 산업에서 특히 취약한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이들을 어떻게 유효하게 영화산업 구조 속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케팅에 있어 제1의 과제는 우월한 제품력이며 지금은 한국영화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헐리우드 영화와 항시적 경쟁해야 할 상황에서 웰 메이드 영화 제품만이 향후 지속적으로 한국 영화산업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영화계에서 특정한 장르와 소재의 영화가 성공한 뒤 이를 모방하는 미투(me-too)제품의 범람으로 소비자의 불만족을 야기했던 경험을 되살려 제2의 실미도, 제2의 태극기가 아닌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영화를 기획·제작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