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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삼성과 싸워 이기는 전략

당신의 경쟁자, 경쟁자에게 당신
삼성과 싸워 이기는 전략 - 이용찬 · 신병철

배성우 / 기획4그룹 대리

 

제목이 멋있었다. 삼성과 싸워서 이기는 전략이라니??? 이 땅에서 마케팅과 광고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 삼성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꿈꿔보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눈길이 갔다.

이용찬의 글이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책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하다 못해 MBC의 '성공시대'를 통해서 누누이 들어왔던 그 유명한 사람이 오랜만에 내놓은 책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그래서 샀다.

(내가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던)이용찬다운 글인 것 같았다. 삼성과 싸워 이긴다니… 삼성을 모든 마케터, 광고인들의 주적으로 삼아놓고 글을 풀어가는 그 관점에서 '이용찬답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언제부터 대한민국 모든 마케터와 광고인들의 타도 목표가 될 만큼 위대한 브랜드가 되었는가???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카피 한 줄의 힘이 언제부터 이렇게 이 땅에서 커졌는지…그 사실의 되새김부터 이 책은 시작이 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현대아파트요, 가전은 LG(금성)였다. 필자에게는, 옛날 아버님이 집으로 삼성의 TV를 사서 보내셨는데, 어머니가 당신께서는 꼭 금성TV를 사시겠다고 아버님이 보내신 삼성TV를 반품한 기억이 있을 정도로 가전에서는 금성이 독보적인 존재였다. 현재 증권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량 증권사 삼성증권은 삼성이 인수하기 전에는 국제증권이라는 업계 중위권의 중견 증권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도대체 무엇이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힘을 만들어 내었는가?

이 책에서는 그 힘을 삼성의 선도 제품의 역할에서 찾는다. 삼성의 선도제품은 반도체와 디지털 기기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세계는 급속히 디지털화 되어갔고, 점점 더 세상에서 디지털 제품의 중요성은 커져만 갔다. 그 디지털 세상의 중심에 바로 삼성의 선도 제품들이 있었고, 이 선도 제품들은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삼성이 선도제품을 얼마나 교묘히 전 제품으로 확장시켜 갔는지는 '반도체 잘 만드는 회사가 TV도 잘 만듭니다', '반도체 잘 만드는 회사 VTR도 잘 만듭니다' 등 소위 '반도체 잘 만드는 회사가 000도 잘 만든다'는 초식에 잘 나와있다.

단순한 기능적 이미지를 브랜드 가치가 높은 상징적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한 마디는 SM5를 런칭하면서 내놓은 한 마디, 즉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개혁론도 삼성의 일류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는데 일조를 했다고 본다.

한 마디로 반도체와 디지털 가전으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파워는 결국에는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와 같은 슬로건을 통해 대중의 머리 속에 기능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의미로까지 확산됨으로써 강력한 브랜드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 그렇다면 이렇듯 삼성이라는 두 글씨만 붙으면 대중을 휘어잡는 거대한 브랜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방법을 한 마디로 '넓으면 약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즉 삼성에 대한 소비자의 긍정적인 태도는 선도 제품의 강도가 매우 강하고, 이것의 강도가 다른 상품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소비자들의 삼성에 대한 태도는 구체적인 정보 탐색 과정이 생략된 매우 모호하고 전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경쟁자가 소비자에게 구체적인 편익을 제공한다면 틈새 시장에서 삼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오히려 매우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성을 이긴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딤채'와 '쿠쿠'를 든다. 딤채는 일본 사람에게는 스시 냉장고, 유럽 사람들에게는 와인 냉장고가 필요한 것처럼 한국 사람에게는 김치에 맞는 김치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다년간의 연구 개발과 전략적인 마케팅으로 가전 시장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대표적인 브랜드라는 것이다. 딤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소비자의 니즈가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시장을 스스로 만들었으며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김치 냉장고에 전력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에 있음을 저자는 직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쿠쿠'를 또 하나의 예로 든다. 쿠쿠 역시 전기밥솥이라는 미쳐 삼성이 신경쓰지 못하는 영역을 개척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한 브랜드로 들고 있다. 위의 두 예처럼 삼성을 꺾고 성공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만 할까? 시장을 좁히고 소비자 니즈를 한 발 앞서 캐치하며 자신만의 영역에 집중하고… 아마 몇 번씩은 배우고 책에서 보았을 전략을 저자는 책의 반을 할애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몇 가지 마케팅 전략만을 나열해 놓는 것으로 이 책이 정리되었다면 실로 실망스러운 책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무수히 많은 훌륭한 전략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진정한 엑기스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략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아니 경쟁자와 싸움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은 어디인가?

저자에게 있어 이기기 위한, 싸우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생각'이다. 저자는 그 의미를 '싸움의 시작에는 생각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과, 삼성이라는 거대 브랜드와 싸워 이기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생각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 이 책 저자들의 확고한 신념임을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다.(하긴 생각해보면 이용찬씨는 성공시대에서도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가 아니라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말로 다른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다른 생각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은 뉴튼의 만유인력의 발견에서부터 가우스의 정리, 하다못해 나이키에 대항하는 아디다스의 마케팅 등 수많은 예를 들며 이야기한다.

다른 생각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 가장 최근의 예를 보자. 1990년대 초반 독일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나이키는 이 대회의 주스폰서로 대회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주요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디다스는 스폰서를 할 자금도, 후원을 받는 주요 선수들도 없었다. 하지만 아디다스는 마라톤 대회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버렸다. 나이키가 타인과의 경쟁에서 싸워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기 위하여 주요 선수들만을 후원한 데 비하여 아디다스는 마라톤을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디다스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최고령의 노인을 스폰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마라톤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아디다스는 이 노인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입니다. 아디다스'

결과는 어떠했을 것 같은가? 나이키를 누르고 아디다스가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반향, 더 많은 매출을 불러왔다. 최근에도 스포츠의 근본 정신을 얘기하는 아디다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Impossible is Nothing'이라는 아디다스의 메시지가 나이키의 'just do it'보다 몇 수 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처럼 마케팅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책의 저자는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고정관념의 재해석이라고 감히 이야기한다. 바로 사물과 사람과 그 관계에 대하여 다른 생각으로 고정관념을 깨고 통찰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케팅과 광고의 핵심이다.

필자는 다른 어떤 장보다 '마케팅의 핵심은 고정관념의 재해석'이라는 부분만 읽으면 이 책에 담긴 정수는 다 읽은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실상 마케팅과 광고의 핵심이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만남과 낯섦을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것임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마케터가 있을 것이며,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 광고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광고계 입문 초년차 때 귀에 들어오던 이 말이 다시 한번 귀에 들어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에 내가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리라.

광고에서 '생각의 힘'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군다나 '다른 생각의 힘'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돌아가신 대홍기획의 강정문 전무님은 그 분의 글에서 '광고인은 생각하는 것으로 밥 먹고 사는 직업'이라 하셨으니 정말로 적절한 표현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으로 밥 먹고 사는 광고인도 일을 하다 보면 내 자신부터 고정관념, 매너리즘, 초식에 한껏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무수히 들었다. 한 번쯤 더 생각해보면 뭔가가 있을 것 같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길이 보일 것 같은데… 항상 정상을 눈 앞에 두고 하산하는 것 같은 거북한 감정이 항상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의 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통찰을 얻는 14가지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고정관념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펴라/구조화하라/새로운 만남을 제안하라/새로운 만남으로 낯섦과 공감대를 주라/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하라/있는 것 그대로 보고 사랑하라/완전히 몰입하라/완전히 몰입하되 완전히 버려라/작은 차이를 놓치지 마라/자신의 생각에 성실하라/스스로에게 긍정적 예언을 하라/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구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라/근육 학습(체득)을 하라' 등이 그것이다.

걔 중에는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어떤 것은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은 알고 있었지만 미처 실천하지 못한 것들이니 분명 공감 가는 면이 많다.

그 중에서도 문사철을 겸비하라는 얘기는 마케팅과 광고에 있어서 다양한 경험과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얘기해주고, 작은 차이를 놓치지 말라 라는 말은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알게 해준다.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불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꼭 필요한 한 가지를 고수할 때 컨셉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이 책은 삼성과 싸워 이기기 위한 현란한 전략이나 전술이 들어가 있는 책이 아니다. 휘황찬란한 아직까지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략이 숨겨져 있음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또 한번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삼성을 이기는 길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길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고 경험한 것에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마케터나 광고인이라면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정리하고 다시 한번 떠올리기 위하여 읽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한번쯤은 신입사원 때 들었던 이야기를, 광고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시 들을 필요가 반드시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삼성을 한번쯤은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지….

만약에 삼성을 이기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먼저 본인의 생각을 바꾸라. 그리고 남들보다 한번 더 생각하라. 술을 마시건 밥을 먹건 영화를 보건 한번 더 생각하라. 그러면 이미 반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