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인간·모델·광고 3 / 아이러버 딕플 광고 등장한 금강기획 소환철 대리

편집실

빅모델과의 'Shall we dance?'

"Shall we dance∼" 그림처럼 이쁜 김태희가 노래를 한다. 샘날 정도로 이쁜 목소리다. 그 옆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학생이 있다. 바가지 헤어스타일에, 툭 튀어나온 앞니, 뺑뺑 돌아가는 안경‥‥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게 생겼다.

똑 부러지는 여학생과 조금은 덜떨어져 보이는 남학생, 웬만해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김태희를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가 필요했다

최근 아이리버에서는 MP3플레이어 기능을 갖춘 전자사전 '딕플(Dicple)'을 출시했다. 딕셔너리 플레이어(Dictionary Player), 즉 사전과 플레이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처럼, 딕플은 2백 90만개에 달하는 어휘를 담고 있는 사전과 최고의 MP3 플레이어가 탑재된 참으로 탐나는 제품이다.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존의 제품들이 무채색의 둔탁한 교복 세대 이미지라면 딕플은 빨간색 옷을 입은 귀여운 요즘 여학생 이미지다.

해마다 2∼3월 내에 판매의 60%가 이루어진다는 전자사전의 특성에 맞게, 아이리버에서는 단기간에 강력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고, 그 중 서울대 출신이라는 스마트한 이미지로 소비자 수용도가 높은 김태희가 메인 모델에 선정이 됐다.

자∼ 여기까지가 김태희라는 빅모델의 캐스팅 배경이다. 여기에 플러스 알파, 딕플 광고만의 새로운 양념이 있다. 너무나 이쁜 김태희와 너무나 어리숙한 그 남자 - 김태희가 아이리버 딕플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이에 대칭적 구도를 형성, 김태희의 이미지를 한층 돋보여주는 '한남자' 말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캐릭터?

김태희를 돋보여주는 장치로 캐스팅된 모델은 금강기획의 아이리버 담당 아트 플래너인 소환철 대리이다. 일반인이나 광고인이 광고 속 모델로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으나, 실제 담당하는 스텝이 이렇게 주연급 모델로 발탁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닌가 싶다.

처음엔 예정된 남자 모델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PPM 현장에서 쭈빗쭈빗 부끄러워하며 촬영장을 돌아다니는 그에게서 감독은 머릿속의 캐릭터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생각하는 모델의 컨셉은' 너드(nerd)', 즉, 주근깨, 툭 튀어나온 치아를 갖고 있으며 '두뇌는 명석하나 세상물정 모르는 이미지' 였다.

시안 모델 한번 해보지 않았던 소환철 대리에게 광고모델을 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고 한다. 실제 본인의 모습과는 다른 망가진 모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담당하는 광고주의 광고에 출연한다는 것은, 자신으로 인하여 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때 느끼게 될 두 배 이상의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리버라는 광고주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이리버에 대한 애정이 강한 그였다. 특히, 벤처기업으로 시작하여 업계 1위로 성장했지만, 1위로서 전할 수 있는 메시지보다는 자사의 이미지를 차별화하는 광고전략으로 핵심 타깃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광고인이라면 한번쯤 욕심낼만한 광고주가 아이리버이기 때문이다.

광고 밖에서도 빅모델은 왕이다

광고 촬영 당일. 메이크업을 위해 들린 미용실. 이미 도착한 모델 김태희에게는 7∼8명의 아티스트가 붙어서 따뜻한 차까지 대접을 하며 융숭한 대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등장을 의문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스텝들. "왜 태희 언니 상대역이 저런 사람이야" 하며 소근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이러한 반응은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 그가 금강기획의 디자이너임을 모르는 스텝들은 신출내기 모델인 줄만 알았을 것이다.

"이번 광고는 김태희씨가 중심이었습니다. 최고의 모델을 어렵게 캐스팅한 만큼, 광고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십분 발휘하게 할 필요가 있었죠. 결국, 잘생긴 모델보다는 평범한 제가 김태희씨를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는데 일조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듣기 좋은 말로 촬영 당시를 설명하지만, 무명 모델의 설움이 이런 것인가하고 느꼈을만큼 광고 안에서나, 촬영장에서나 빅모델은 '왕' 이었단다.

누구보다 애정을 갖고있는 광고주의 TV광고 모델이라는 부담 때문에 연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연기 지도를 좀 받아야 하지 않나 물었더니 메스매스에이지의 박명천 감독은 오히려 '그냥 오라' 했단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은 무기였을까. 다행히 큰 NG없이 촬영은 진행됐다.

에피소드하나. 남자모델이 씩∼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딕플을 넘겨 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명랑 만화 주인공과 같이 웃는 표정을 계속 하다 보니 입술에 쥐가 났다고 한다. 하마터면 김태희 앞에서 침 흘릴 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고.

광고가 방영된 이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특히, 일주일에 한번씩 광고주 사무실을 방문할 때면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광고주에게 시안을 줄 때 광고의 엔딩컷을 패러디해서 곁눈질해서 넘겨준다던가, '모델 소환철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상대방도 좋아하는 눈치라고, 인간적인 호감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광고를 제작하는 스텝들은 모델 전략을 놓고 머리를 싸맨다.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는 빅모델을 선택할 것인지,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하는 빅모델이 아니라면 길거리 캐스팅이나 인터넷 얼짱, 일반인 모델 등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야 하는데 검증되지 않는 얼굴을 선택하는 것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니다.

"결국, 광고 컨셉을 잘 살릴 수 있는 모델이 좋은 모델 아닐까요. 모델이 가지고 이미지에 +a가 더해져 사람을 끌어 들이는 매력이 있는 모델이 좋은 모델이겠죠. 그 매력이라는 것은 빅모델의 카리스마일 수 있고, 일반인 모델의 신선함일 수도 있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모델 선정 자체가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전원주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이겠지요. 빅모델이 아닌 경우도 캐릭터를 잘 살리면 빅모델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 이것이 모델 전략의 묘미일 테구요' 아트플래너 소환철 대리가 생각하는 좋은 모델이다.

소환철 대리의 얼굴을 아이리버 광고 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연기력 부족이나 적은 모델료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아트 플래너라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빅모델과 제품을 빛내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히 망가뜨릴 수 있었던 그의 연기는 우리 머리 속에 신선하게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