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여행 | 하바나의 음악 클럽

열정과 낭만이 있는 문화공간
하바나의 음악 클럽

윤창호 / 여행작가(사진·글)

 

몇 년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설 클럽'은 쿠바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쿠바에 대한 막연한 동경마저 품게 만들었다. 사실 이 영화가 인기를 끈 배경에는 쿠바 출신의 무명 노장 뮤지션들이 모여서 하바나의 밝은 스튜디오에서 단 며칠만에 만든 앨범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하면서 쿠바 음악 열풍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시거 공장 노동자로, 구두닦이로 살던 왕년의 뮤지션들이 모여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는 줄곧 나를 쿠바로 끌어당기는 이상한 마력 같은 것이기도 했다.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쿠바 특유의 열정적인 선율은 나의 경계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날려버렸다. 아니 내 이성의 끈이 스르르 풀어져 내리는 듯한 묘한 환각 상태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아마도 쿠바의 다른 지방에서 온 젊은이들인 것 같았는데,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도 아까웠던지 공항 로비 한가운데에 진을 치고 않아서 기타와 봉고, 마라카스 등의 전통 악기들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고, 주위에 몰려 서있던 사람들은 흥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항 로비는 춤과 음악 판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마치 올드 카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하바나의 거리에는 50년대식 미국 차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인력거들이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공항 내의 에이전시에서 예약한 호텔은 카리브 해가 굽어보이는 해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더욱 나를 기쁘게 한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창문을 열어젖히자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 선 올드 하바나와 오후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끝없이 오가는 해변, 등대,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카리브 해가 시야에 들어온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 어디에서도 체게바라와 카스트로, 그리고 호세 마르티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지로서의 무거움은 찾아볼 수 없다. 식당에서건 골목길에서건 틈만 나면 살사를 추는 사람들과 굵은 시거를 물고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성조기를 두건처럼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 겁 없는(?) 신세대 멋쟁이 소녀들‥‥. 매스컴을 통해서 전해지는 지극히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그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왜곡된 인상을 가지게 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하멜거리에서의 룸바공연.
하멜거리는 하바나의 젊음과
문화의 메카이다.

하바나 리브레의 재즈클럽

하바나 교외의 레스토랑에서의 음악공연. 하바나에서는 어디서나 열정적인 선율을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하바나의 매력이라면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음악을 꼽고 싶다. 영화 '부에나비스 타 소셜 클럽'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쿠바에는 무명의 거장(?)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평소에는 여느 시민들처럼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음악 활동을 한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였던 콤파이세군도는 시거를 마는 노동자였고, 이브라힘 페레르는 구두닦이를 하다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바나에서 알게 된 청년도 그랬다. 하바나 해변을 거닐고 있는데 자기 집에서 민박을 하지 않겠느냐며 다가왔었다. 나는 이미 호텔에 여장을 풀었던 터라 사양했더니 돌아서려던 그가 자기는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다음날 하멜 거리에서 룸바 공연이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와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멜 거리에서 격정적인 목소리를 토해내는 그 청년은 전날의 수수하기 그지없는 모습과 달리 열정에 넘치는 가수로 돌변해 있었다. 그렇듯 하바나의 무명 음악가들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바나에 머무는 일주일동안 나는 밤이 되면 인력거나 삼륜 택시를 타고 음악 클럽들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가는 곳 마다 가슴에 전율이 이는 듯한 감흥에 빠져들곤 했다. 재즈 클럽에서 럼주 하바나 클럽을 마시며 음악을 즐기던 60대 노인에서부터 살사 클럽에서 관능적인 율동을 보여주던 젊은 남녀에 이르기까지 쿠바는 마치 음악을 위해 사는 듯이 보였다.

쿠바음악은 라틴 음악의 모태로 불린다. 그런데 쿠바 음악의 특징은 그들의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쿠바를 지배했던 스페인은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쿠바로 데려왔고,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의 흑인 음악이 스페인의 영향이 강한 쿠바의 전통 선율과 음화되면서 독특한 음색과 리듬을 가진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이 아프로 큐반(Afro-Cuban)음악이자 쿠바 음악의 모태이다. 이 음악은 다시 맘보나 차차차, 살사등의 모태가 된다. 요즈음 쿠바 정부는 어려운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살사를 문화 상품으로 내세우고 살사의 전문 무용수 교육과 해외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04. 쿠바의 전통 민화에도 쿠바음악의 열정적인 선율이
녹아있다.
05. 쿠바의 토속 인형. 시거와 음악은 쿠바의 상징이다.
06. 하바나를 대표하는 음악클럽 중에 하나인 '카사데라 뮤지카'. 살사 외에도 다양한 라틴 음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하바나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쿠바 인들은 살사의 프로들이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이제 겨우 다섯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절묘하게 몸을 틀며 살사춤을 흉내 내며 놀고 있을 정도다. 하바나에는 많은 음악클럽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살사만을 위한 클럽도 있고, 또는 여러 가지 음악 장르를 즐길 수 있는 클럽들도 있다. 플라야 거리에 있는 살사 클럽 카사 데 라 뮤지카는 하바나의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오후 다섯시의 오픈 시간에 맞춰 클럽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줄지어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모두들 모히토나 콜라 같은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웃고 떠들다가 간단한 사회자의 인사말에 이어 음악 연주가 시작되자 클럽 안은 그야말로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로 변한다. 특히 늘씬한 흑인 남녀의 격정적인 살사춤은 그저 황홀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듯 하다. 살사 클럽 외에도 하바나 리브레 주변에는 재즈 바와 각종 음악 클럽들이 많아서 밤이면 춤의 향연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하멜 거리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룸바, 살사 등의 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이런 살사를 비롯한 하바나의 춤과 음악의 향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모히토라는 칵테일이다. 하바나에 살며 '노인과 바다'를 썼던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것으로도 유명한 모히토는 쿠바음료의 대명사로도 불릴 만큼 모든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하바나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새벽이 가깝도록 호텔 밖 해변에서 기타를 치고 북을 두드리며 춤을 추어대는 젊은이들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대다가 끝내는 다시 옷을 입고 해변으로 나갔다. 여전히 춤과 음악에 취해 있는 그들 곁에 서서 구경하는데 젊은 남자가 다가 와서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소개를 하고 악수를 청하고는 나를 춤판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어색하기만 했지만 이것도 마지막이다 싶어서 어색하지만 박수를 치며 천천히 흉내를 내 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달빛 쏟아지는 하바나의 해변에서 살사를 추는 남녀의 실루엣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